서울복지타임즈 이재연 기자 | 고흥군은 임진왜란 시기 전라좌수영의 1관 4포 수군진이 있었던 지역으로, 당시 흥양인들이 임진왜란 승리의 주역이었음을 밝히기 위해 지난 16일 ‘난중일기 속 고흥인물 조사' 용역을 마쳤다고 밝혔다.
이번 용역은 지난 11월부터 진행됐으며,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임진장초’ 등에 기록된 임진왜란 당시 고흥 출신 인물과 고흥에서 활동한 인물에 대해 구별하여 구체적인 활동을 분석했다. 기존에 고흥군에서 발간한 임진왜란 인물 자료를 대조하여 최종 결과를 도출하고 용역보고회를 개최했다.
용역 결과에 따르면, ‘난중일기’와 ‘임진장초’에 기록된 고흥 출신 인물은 170명이며, 1관 4포의 지휘관과 감목관 등 고흥에서 활동한 인물 17명을 조사했다.
조선시대 흥양현은 전라좌수영에 속해 있었으며, 5관 5포 중 1관 4포가 배치됐다. 임진왜란 발발 시 이순신의 지휘 아래 전라좌수영에서 출전한 판옥선은 총 24척이었다. 이 중 흥양현의 판옥선은 총 11척으로 임진년 해전에서 큰 전공을 세웠다.
1592년 7월에 있었던 한산대첩에서는 전라좌수영의 전사자 19명 중 13명이 흥양수군이었다. 중상자 115명 중 59명이 흥양수군으로, 이들은 격군, 수군, 군관, 의승장, 노비 등으로 목숨을 돌보지 않고 적극적으로 전투에 참여했다는 의미이다. 흥양수군은 한산대첩의 주역이었지만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다.
이 외에도, 각각의 해전에서 전사자와 중상자 중 흥양수군이 가장 많았으며, 당포해전에서는 3형제가 전사하거나 중상을 당한 일가도 있었으며, 형제 및 부자가 참전한 경우는 다수였다. 이처럼, 임진왜란 7년 전쟁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한 전라좌수군의 핵심은 흥양수군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난중일기’를 통해 7년 전쟁 동안 고흥 출신 인물들이 주요 직책에서 역량을 발휘했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이전부터 무관직을 두루 역임한 노장으로 임진왜란 동안 이순신의 조방장 및 충청수사로 해전에 참가했던 정걸장군을 비롯한 많은 인물을 파악했다.
군 관계자는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각각의 인물의 유물과 유적을 추가 조사하여 인물자료집을 발간할 계획이며, 학술대회 등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부각시키고 선양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또한, 관련 내용을 고흥군대표 누리집(홈페이지)에 게시하여 널리 홍보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또한, “임진왜란 공신 집안에 소장된 고문서 등 관련 자료를 한데 모아 유물 특별전을 기획하고 있으며, 흥양수군학교를 개설하여 지역민뿐만 아니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흥양수군의 의미를 홍보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